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-신라 관계 (문단 편집) === 중반(고구려 우위) === 그러다 [[5세기]]에 고구려의 전성기가 열리는데, 이 때 신라가 [[광개토대왕]]의 고구려와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 신라로 침입한 백제, 왜, 가야 연합군을 고구려가 격퇴하는 등 크게 도움을 받았다. 고구려가 강원도 북부, 황해도, 충북 일대를 장악하면서 옛 진한-낙랑대방 무역로가 복원된 것 또한 물론이었다. 그러나 이에는 대가가 있었다. 신라왕이 고구려 천하관을 받아들여, 대왕 고구려왕에게 신하로서 복속하고, 경북 서북부를 고구려군 주둔지로 내주며 서라벌 근처에서도 고구려군 주둔지를 두게 해주는 관계가 형성된 것. 이 기간 동안 신라는 고구려의 선진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군사적, 경제적, 행정적으로 큰 발전이 이뤄지며 문화적으로도 크게 동질화가 진행되었으나[* 이 시기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었기에 고구려가 그 전 백제처럼 무역로를 막는 등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. 대립 관계라면 모를까 아예 복속된 속국의 경제적 이권이나 경로를 차단하는 종주국은 없기 때문이다.], 위와 같이 기분 나쁜 관계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다. 이후 4세기 중반에 신라가 백제와 우호 관계를 맺게 되자 대백제전을 크게 중시하던 고구려가 당황했으며, 이에 신라와 함께 [[충주 고구려비]]를 세우면서 둘의 관계설정을 다시 한다. 물론 고구려 우위는 변함 없었으나 이 때 신라왕은 고구려왕의 단순한 ‘신하’가 아닌 ‘동생’으로 의제되어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